석유보다 원전으로, 원전보다 태양광으로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 발전 비중 확대가 지속가능성 확보의 열쇠
7·8월 내내 폭염이 이어지며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자 수가 작년의 2.6배에 달하고 사망자가 20명 넘게 나온 가운데, 7월 평균 하루 최대 전력 수요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폭염)인 날이 평년의 4배인 15일에 달하면서 냉방 전력 사용량이 많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IEA, 전력 소비 더 늘 것으로 예측
그럼 왜 이리 더위가 오래가는 걸까? 맑은 날씨를 불러오는 고기압이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고 있어서인데, 대기 중하층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그 위로는 티베트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을 겹겹이 뒤덮은 상태이다. 며칠 동안 이렇게 높은 기압이 유지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더위가 계속된다는 거다.
7월 평균 하루 최대 전력 수요는 85.0GW(기가와트)로, 지난해보다 5.6% 많은 수치다. 이는 역대 최대치와 가까운 수준으로, 8월에는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또 전력 당국은 휴가철이 끝나는 8월 둘째 주 이후 올 여름 최대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세계 전력 수요가 연평균 약 4%씩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전력 수요가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본 것인데, 이에 인공지능(AI) 수요 증가와 맞물린 데이터센터 증설과 냉방 수요 급증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 IEA는 지난 4월 낸 보고서에서 2030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현재의 2배로 증가할 것이고, AI 데이터센터 수요는 현재 대비 4배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대응
기후적 원인과 국제적 요인이 겹쳐 전력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건데, 우리 정부는 이러한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어떤 정책을 내 왔을까?
먼저, 과거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은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육성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2017년 5.6%에 불과했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21년 7.5%로 1.9 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 정책의 목표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24%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주로 탈원전 폐기와 원전 생태계 복원을 추진했다. 탈원전으로 중단됐던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 수명연장을 모두 진행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재생에너지 호황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고, 원전을 다시 사용하는 건 잘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문재인 정부와 비슷하게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요약된다. 핵심은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과 ‘햇빛바람연금’ 도입이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호남 태양광 단지, 해안가 풍력 단지 등과 수도권을 잇는 고전압 전력망이다. 햇빛바람연금은 지방의 남는 땅에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를 대폭 설치해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고, 거기서 얻는 수익을 지역 주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이다. 이재명 정부는 또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한 발짝 뒤로 양보해 원자력 발전과 친환경 발전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원전과 친환경에너지, 어떤 게 나을까
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원전을 없앴다 늘렸다 하고, 친환경에너지를 장려했다 배척하는 것일까. 두 발전 방식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이 기사에서는 원자력 발전과 친환경 발전을 간략히 설명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발전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이러한 전력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지 짚어 본다.
우선 원자력 발전이란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로 증기를 만들어 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인데, △적은 양의 연료로도 많은 전력 생산이 가능해 생산 단가가 낮고 △원료인 우라늄의 공급이 안정적이며 △다른 발전 시설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낮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 문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자력 발전에는 방사성 물질을 사용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문제와 방사능 유출 문제로 이어진다. 체르노빌 원전과 후쿠시마 원전처럼 막대한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은 물론,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대한 법적 근거와 폐기물을 처리할 마땅한 장소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플루토늄 등 방사성 폐기물은 암을 일으키고 몇 밀리그램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등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26개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후 핵연료(방사성 폐기물)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영구 폐기장이 아직 없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작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금은 방사성 폐기물을 원전 안에 있는 수조에 임시 보관하고 있지만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 문제다.
그래서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발전 수단으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친환경 발전이다. 친환경 발전은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처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발전 수단을 말한다. 친환경 발전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연료가 고갈되지 않고 △대기 중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으며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친환경 발전에도 단점이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높고 △위치와 날씨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에너지의 안정적 저장을 위해 배터리가 대량으로 필요하다. 경제성 부분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원전에 찬성하는 쪽은 친환경 발전이 경제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는 원전이 친환경 발전보다 저렴한 만큼, 그 주장은 일부 타당하다.
"친환경 발전 비용, 원전보다 낮아질 것"
반면, 최근 연구 결과는 앞으로 미래에는 친환경 발전 비용이 원전보다 낮아질 것이라며 원전 찬성파의 주장을 뒤집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한 연구소에 따르면, 태양광의 발전 단가는 2030년부터 원전보다 낮아지고, 육상 풍력의 경우 2045년부터 원전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재생에너지 전반의 발전 단가가 2050년까지 최대 5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자원경제학회 역시 2030년이면 태양광 발전의 비용이 사고 위험 등을 포함한 원전의 발전 비용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전력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원전보다는 친환경 발전을 적극 장려하는 게 타당해 보이는데, 우리 정부는 친환경 발전 비중의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지난 2월, ‘제11차 전력 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대폭 올리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는 2038년까지 이를 29.2%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지만, OECD의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평균은 35.84%로, 이미 우리의 13년 뒤 목표를 웃돈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전력 수요 급증이 전망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친환경 에너지는 결국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간 길’이기도 하다. 국제적 기준에 맞게 우리나라도 친환경 발전을 늘리고, 화석 에너지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원전도 화석연료보다는 낫지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고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친환경 발전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만 AI 시대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