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적인 언론은 없다

중립적인 언론은 없다. 언론은 필연적으로 편향돼 있다. <토끼풀>도 마찬가지다.
‘사실(팩트)만 전부 보도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지면·온라인 공간상 모든 사실을 보도하기 어렵고, 팩트들을 모두 같은 비율로 다룰 수도 없다.
그래서 언론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팩트를 취사선택해 보도한다. 어떠한 팩트를 취사선택할지도 언론의 권한이고 권력이다.
<조선일보>나 <한겨레>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사실이 아닌 것들을 보도한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이 편향적이라고 불리우는 건 팩트를 취사선택하기 때문이다.
독자 개개인의 사고도 편향되어 있다. 평소 <한겨레>만 보는 사람은 <조선일보>가 편향적이라고 느낄 것이고, 그 반대는 <한겨레>가 편향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최근 <토끼풀>에 중립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기계적 중립을 강요한다. 마치 관영 언론처럼 그들이 원하는 소식만, 의견 빼고 보도하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특히 ‘교육의 중립성’을 강조한다. 헌법·법률에도 나와 있다며. 학교 안에서 배포하려면 중립을 지켜야 하고, 때로는 검열도 받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배포를 금지하겠다고 협박한다.
‘교육의 중립성’은 학교 자체와 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학생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은 법전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언론의 자유, 특히 학생 언론의 자유가 법에는 더 단단히 박혀 있다.
공부 좀 더 하고 오라.
‘교육의 중립성을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의 사고가 편향된 건 아닌지. 그들이 보수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를 맹목적 진보로 몰아가는 건 아닌지.
언론의 본질은 중립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언론은 중립적인 사실만 전하기보다는 각자의 가치에 맞는 의견을 전해 여론을 형성했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
<토끼풀>은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 때로는 비난받더라도, 독자의 편에서, 청소년의 편에서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