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자격 없다” 목숨 끊는 청소년

“성공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자격 없다” 목숨 끊는 청소년
사망 원인에 따른 청소년 사망자 수 그래프. 안전사고나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꾸준히 감소한 반면, 자살은 오히려 증가했다.

'반드시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청소년이 성적이 곧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척도라고 믿게 만들었다.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 승리는 패배를 낳았고, 그 어느 쪽도 진정한 승자는 될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수치화’ 되는 세상에서 끝없는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은 ‘사랑’과 ‘기대’라는 이름의 부담과 절망을 껴안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조금의 뒤처짐도 실패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는 청소년에게 성공을 강요하고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한다.

46.1%. 10대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5위였다.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했고, 그 증가세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환히 밝혀주길 원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무조건적’인 기대만을 하고 있진 않은가. 청소년들을 과도한 경쟁과 실패의 두려움으로부터 제대로 보호해 주고 있는가. 우리가 마주한 청소년 자살이라는 문제는 과연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지 되묻는다.

청소년이 자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들이 남긴 유서에는 ‘부모님의 기대에 화답할 수 없어서 너무 죄송하다’,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더는 싫다’ 등의 내용이 담긴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기대를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짊어진 기대가 구체적이고 달성하기 어려울수록 아이들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왜곡된 믿음이 더욱 확고해진다.

학업 스트레스·사교육 과잉 문제가 자살로 이어져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학업 스트레스’가 청소년들의 주요한 자살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교육부 조사에서도 청소년이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학업 스트레스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 제도의 결과다. 내신 제도는 지난 수십 년간 몇 번의 변화를 거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시’로 대학을 가는 사람들은 ‘정시’로 대학을 가는 사람들보다 3배 이상 많아져 80%에 육박하게 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2026학년도 대입에서 수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79.9%고, 앞으로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도표)

본래 내신·수시 제도는 인생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수능’의 부담을 줄이고자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내신 제도는 맹목적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켰고, 끊임없이 ‘성적 지상주의’의 가치를 주입당하는 청소년들의 우울감을 유발했다. 또한 중학교 내신의 난이도와 고등학교 내신의 난이도 편차가 커 고등학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도 부족한 상황이다.

사교육 과열 문제도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고액의 학원비를 지불해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공교육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학업에 대한 부담이 더욱 늘어난다. 또한 사교육을 병행하는 학생들도 학업 부담이 과도해지면서 심리적, 신체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사교육은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며 학생들의 흥미를 잃게 만들어 저소득·고소득층 학생 모두의 학습 동기를 저하시킨다.

'자살 예방 교육' 효과 없다...근본적 원인 찾아야

청소년들은 끝없는 경쟁과 비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비난하고, 타인의 성공을 이유로 남에게 비난당하며, 자식의 성공을 이유로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자살하지 마라', ‘심리 상담을 받아라’ 같은 말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교육은 자살 예방 효과가 거의 없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강당에 모아놓고 단방향적으로 실시하는 자살예방교육보다는 1대1 상담이나 집단 상담 등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살률을 낮추려면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최소한 덜 불행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경쟁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이 자살까지 이어지는 만큼,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공교육의 울타리 내에서 학습을 다양화하고 학생 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험 위주의 평가 방식을 벗어나 학문적 탐구를 중요시하는 평가 제도를 준비하여 학습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치며 지낼 수 있는 사회가 마련된다면, 형식적인 ‘자살 예방 교육’을 하지 않아도 자살률은 알아서 줄어들 것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