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탄압 사태의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에 대한 토끼풀의 입장
안녕하십니까. 청소년 언론 토끼풀입니다.
간밤에 여러 커뮤니티, 트위터 등에서 저희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 접했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저희는 저희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너무 많은 분들께서 후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현재 후원금의 회계 처리와 서명운동 처리 때문에 통상적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이번 신도중학교의 일은 결코 돌발적이거나 이례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토끼풀>이 교내 배포를 시작한 이래, 다수의 학교에서 '학부모 민원 우려', '학교에 등록하지 않았다' 등 불명확한 이유를 들어 배포를 통제하거나 사전 검열을 시도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져 왔습니다.
저희는 이번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학교에서 통상적으로 늘상 있었던 일들에 특별히 압수와 대화 불수용이라는 요소가 들어갔을 뿐이라, 공론화가 제대로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론화를 더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어설프게 실행했을 때 학교에서 줄 불이익들도 걱정했습니다. 괜히 대든다고 더 찍어누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우려했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론 보도들도 많이 됐고, 시민 분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청과 정치권이 나섰습니다. 교육청 학생인권센터에서 직권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각종 정당들은 적극적으로 논평을 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저희 문제는 해결될 것 같습니다.
전부 시민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제 배포 금지 처분이나 학교로부터의 불이익과 같은 부분은 걱정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제는 신도중학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서 재발 방지와 교육청 차원의 학생 언론 지침 마련에 힘써야 합니다. 저희에게 있었던 일들은 운좋게 많은 분들이 나서 주셔서 해결됐지만, 나중에 저희의 후배들에게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학교 문화의 뿌리를 건드려서 고쳐 놔야 합니다.
학교는 아직 군사정권 시절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개개인의 활동을 극도로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듭니다. 일선에 계신 평교사 분들의 문화는 나름 개선됐지만, 관리자급의 분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을 전부 교사가 통제할 수 있다거나,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학교가 비로소 40년 가까운 세월 끝에 바깥 사회를 따라 민주화될 수 있습니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이 그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학교'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교육 3주체가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행사해야 할 텐데,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은 학교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지난 16호 <학교는 아직 군사정권 시대?> 보도에서도 다뤘는데, 학교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고 학생 당사자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을 규칙인 학칙을 개정할 때도 학생의 의견 수렴은 유명무실합니다. 교사들이 알아서 정해 와서 학생회 모아 놓고 “우리 이렇게 이번에 개정했으니까, 학생들 이거 잘 지킬 수 있게 너네들이 선도해”라고 하는 게 ‘의견 수렴’으로 기능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위원도 필수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성숙하다고 해도 학생들 본인의 학교생활이 걸려 있는 문제를 학생 빼고 논의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들 미개하니까 우리가 대신 통치해서 잘살게 해줄게”라는 일제의 논리와도 비슷합니다.
학교 안에서 민주주의가 만들어져야 바깥의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학교에서 10년 넘게 배우고 바깥 사회에 나가니까요. 지금의 정치 무관심층 문제나 극우화 문제도 학교 안 민주주의의 미비함 때문에 생긴 측면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참여와 토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아예 안 가지거나, 토론과 사유를 통해 걸러 받아들여야 할 정보를 SNS 등에서 점점 편향되는 알고리즘으로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사회에 계신 분들이 진정 이런 문제에 대해 걱정하신다면,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 자치나 언론 활동을 장려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해 봐야 바깥에서도 할 수 있지, 학교에서는 무조건 '공부만 해야지' 하며 틀어막다가 성인이 돼서 갑자기 정치에 참여하라는 건 무책임합니다.
우리 교육은 이제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학생들의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민주적 대화의 장에서 교사·학부모와 동등히 대우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사와 학생의 권리가 둘 다 보장됩니다.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교사의 권리를 보장할 수는 없고, 반대로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학생 인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제한적인 자유, 이를테면 혐오 표현을 학교에 적나라하게 게시하거나 하는 등의 자유는 원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학교들마다 자의적으로 표현을 제한하고 있어 문제인 것입니다.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가 참여해 민주적으로 정한 규범을 모두가 따라야 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기준을 정하면 신문을 만들 때 엄격히 준수할 것입니다.
교육청 차원에서 이러한 규범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별 학교에게 떠넘긴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학교별로 수준도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교육청에서 학생·교사·학부모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지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재발 방지고 학교 민주화일 것입니다.
교육청의 지침 마련과 학교의 탄압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시민참여플랫폼 '빠띠'에서 서명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꼭 참여해 주시고 다른 분들께도 전달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각종 사이트에 이 글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관련해 궁금한 점이나 협력 요청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받고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후원도 충분할 정도로 많이 해주고 계십니다. 저희를 믿고 후원해 주신 만큼, 청소년 주체적 언론 활동에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사용 내역도 상세히 이메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과분하긴 합니다만, 후원해 주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ㅋㅋ). 한 번이라도 후원해 주시면 앞으로 계속 종이신문을 자택으로 보내드립니다. 후원(신문 구독)은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소년 언론 토끼풀 드림.